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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중에 실패한 장군 뒷이야기한국사 2025. 6. 30. 10:38
조선 최고의 기병 장군, 신립조선 중기의 무신 신립(申砬, 1546~1592)은 본래 문과에 급제한 문신 출신이었지만, 뛰어난 무예와 전술적 감각을 인정받아 무반으로 전향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기병 운용에 탁월하여 북방의 야인들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특히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에서 여진족을 격퇴한 업적으로 유명하다. 그의 기병 전술은 "조선에 이런 장수가 있었는가"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당대에선 보기 드문 전략적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신립은 선조로부터 총애를 받으며 빠르게 승진했고, 임진왜란 직전에는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전성기이자 동시에 비극의 시작은 바로 이 임무에서 시작되었다.임진왜란과 충주 탄금대 전투1592년 4월,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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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뒷이야기한국사 2025. 6. 28. 17:53
정조에 대한 한국사 뒷이야기 ‘아버지를 죽인 나라’에서 왕이 되다정조는 조선 제22대 왕으로,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그는 즉위 이전부터 이미 비극의 중심에 있었다. 아버지 사도세자는 정신질환과 폭력성 논란으로 인해 영조의 명령으로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았다. 정조는 당시 10살이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정조는 정치적 생존을 위해 늘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감정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반대파에 반기를 드는 순간, 자신 역시 숙청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그는 눈치와 침묵, 인내로 살아남는 법을 배웠고, 그런 감정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훗날 정조가 쓴 시문과 어록에는 “말보다 생각이 많아질 때, 사람은 깊어진다”는 문장이 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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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는 없는 한국정치사 뒷이야기한국사 2025. 6. 26. 13:35
"광해군, 조선의 가장 현대적인 군주였을지도"영원히 반역자일 수밖에 없던 왕광해군은 교과서에서 흔히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왕” 정도로 짧게 서술된다. 그는 명백히 반정(쿠데타)으로 쫓겨난 임금이고, 이후 사사되지 않고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광해군은 단순히 권력욕에 찬 폭군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혼란의 시대 속에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통치 철학을 가지고 나라를 이끌려 했던 군주였다. 그의 불운은 시대가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그는 외교, 재정, 내치 모두에서 매우 현실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을 갖춘 리더였지만,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그를 소화하기엔 너무 보수적이었다. 실리 외교의 천재, 그러나 명분에 졌다광해군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는 ‘중립 외교’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