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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속 뒷 이야기 고려 ‘망한 왕조들’ 집중 해부한국사 2025. 7. 7. 10:49
위대한 시작, 그러나 균열된 내부918년 궁예를 몰아낸 왕건이 개창한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고, 귀족 중심의 체제를 유지하며 약 500년간 한반도의 중심 왕조로 군림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찬란했던 고려는 내부적으로 많은 모순을 안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문벌 귀족 중심 체제의 고착이었다. 초기에는 개국 공신들과 지방 호족 간 균형이 이루어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경원 이씨, 안산 김씨, 경주 최씨 등 특정 귀족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게 되면서, 지방 사회와 중앙 정치의 단절이 심화되었다. 과거제를 통해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려는 노력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귀족 자제들의 입신 수단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왕권은 점점 약화되고, 국정은 귀족들의 이해관계에 휘둘렸다. 백성들은 중세 봉건 체제 아래에서 무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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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속 뒷 이야기 직업탐구한국사 2025. 7. 4. 18:38
직업탐구 손끝으로 나라를 지탱한 사람들: 도편수 침선장우리는 조선 시대를 이야기할 때 왕과 장수, 양반과 선비를 떠올리지만, 실은 나라의 뼈대와 생명력을 지탱한 이들은 바로 ‘장인’이었다. 특히 도편수, 야장, 침선장처럼 전문 기술과 수공예 능력을 지닌 장인들은 사회 전반의 기반을 형성했다. 도편수는 건축물의 설계자이자 현장 관리자 역할을 했던 목수 중 최고 직책으로, 궁궐, 사찰, 누각 등 조선의 대표적인 목조 건축물의 전체 구조와 균형을 조율했다. 단순히 나무를 다듬는 수준을 넘어서 건축 미학과 물리학적 구조 이해가 필수였으며, 오늘날의 건축감독 혹은 건축가에 해당한다. 야장은 금속을 다루는 기술자, 즉 대장장이로서 농기구, 무기, 말발굽, 금속부품 등을 제작했으며, 특히 군수물자와 관련해 국방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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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의 그늘 속 직업한국사 2025. 7. 4. 15:05
역사의 그늘 속 직업, 백정: 피와 칼로 생존을 잇다조선 시대, ‘백정’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직업을 넘어서 사회적 낙인을 의미했다. 본래 백정은 고려 말까지는 소, 돼지 등의 가축을 도살하고 고기를 손질하는 기술자였고, 초기에는 '일반 평민'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조선이 성리학적 유교 이념을 국시로 삼으면서 점차 육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해지고, 도살과 사냥 같은 직업에 대한 혐오도 심화됐다. 그 결과, 백정은 사회 최하층 신분으로 추락하며 ‘천민’으로 분류되기에 이른다. 이들은 호적에조차 따로 등록되었으며, 일반 백성과의 혼인도 금지되는 등 일상적으로 철저한 차별을 받았다. 백정의 자식은 백정이 되는 것이 당연한 세습 구조가 고착되었고, 심지어 한양의 시장에서는 백정이 지나가면 길을 터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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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칼라 한국사 뒷이야기 : 천한 노동, 귀한 삶한국사 2025. 7. 4. 10:47
조선에도 블루칼라 한국사 뒷이야기 : 천한 노동, 귀한 삶조선 시대를 떠올리면 사대부, 양반, 왕족과 같은 지배계층의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인 이들은 이름 없는 노동자, 즉 오늘날의 블루칼라 계층이었다. 조선은 신분제 사회였고, 천민은 물론 양인이라 하더라도 육체노동에 종사하면 ‘천한 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그 ‘천한 일’ 없이는 왕실의 식탁도, 백성의 생계도 불가능했으며, 수도 한양의 물길 하나, 성벽 하나조차 존재할 수 없었다. 이들은 공식적으로 ‘공장(工匠)’이라 불리며 기술을 가진 장인 계층이었고,도자기 장인, 목수, 석공, 대장장이, 무기제작자, 포목장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다. 대부분 평민 신분이지만 국가로부터 품삯을 받고 특정 기술을 바탕으로 생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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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궁중음식 한국사 뒷이야기한국사 2025. 7. 3. 19:40
시대별 궁중음식 한국사 뒷이야기 조선시대 왕의 식탁, 즉 ‘수라상’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정치와 의례, 권위를 상징하는 국가의 일상적인 의식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조선의 수라상이 하나의 고정된 형식으로 이어졌다고 오해한다. 사실 궁중음식은 조선 전기와 후기, 그리고 대한제국기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형태와 내용이 달라졌으며, 왕의 성격이나 정치적 상황, 외교 관계까지 음식에 반영되었다. 예를 들어 태종이나 세조 시기에는 권력 장악을 위한 엄격한 궁중 질서 속에 음식도 절제된 형식이 강조되었고, 반면 영조와 정조 시기에는 문화예술과 실학이 발달하면서 수라상에도 다양성과 풍성함이 더해졌다. 특히 정조는 왕실의 건강을 중시하여 각종 보양식과 약선 음식의 비중을 높였으며, 이는 후대에까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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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뒷이야기 왕의 식탁 & 현대화 시도한국사 2025. 7. 3. 15:15
조선시대 왕의 식탁단순한 식사가 아닌 권위와 상징, 의례가 결합된 국가 운영의 일부였다. ‘수라상’이라 불린 왕의 식사는 매일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 올려졌고, 기본 12첩에서 많게는 30여 첩에 이르는 음식이 정갈하게 차려졌다. 상에는 육류, 생선, 나물, 찌개, 전골, 김치류, 후식 등이 고루 오르며, 제철 재료를 엄선하여 조리했다. 음식은 단지 맛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왕의 건강과 통치를 위한 것이었기에, 계절과 체질에 따라 엄격히 조절되었고, 간은 절제되었으며 기름기보다는 담백함과 깔끔함이 강조되었다. 음식 하나하나에는 조리상궁의 손맛과 약선철학이 녹아 있었고, 그 조리법은 철저히 구전으로 전해졌다. 왕의 수라는 신선하고 조화로운 맛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극도의 섬세함과 절제가 담겨 있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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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법, 맛 비교 교과서에는 없는 한국사 뒷이야기한국사 2025. 7. 3. 11:47
궁중음식 복원기 & 현대화 시도물 위에 뜬 연꽃같이 정갈하고, 색과 향이 어우러진 조선의 궁중음식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왕조의 권위와 품격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궁중음식의 맥은 급격히 단절되었고, 오랜 세월 대중과 멀어졌다. 그러던 중 20세기 후반, 이 맥을 다시 잇기 위한 복원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중심에는 조선 말기 마지막 수라간 상궁 중 한 명이었던 ‘한희순’의 기억과 구술, 그리고 이를 이어받은 궁중음식 연구자들의 집념이 있었다. 한희순 상궁은 조선 황실에서 직접 수라를 올린 인물로,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명맥을 지켜가며 구전으로 전해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고문헌 『진찬의궤』, 『주방문』, 『음식디미방』 등을 종합하여 실물 재현이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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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문 안에 숨겨진 교과서에는 없는 한국사 뒷이야기한국사 2025. 7. 2. 19:29
사대문 안에 숨겨진 교과서에는 없는 한국사 뒷이야기경복궁 뒤편의 침묵 – 윤씨 일가의 몰락과 청풍계 터사대문 안에서도 가장 권력이 집중되었던 곳은 단연 경복궁 일대였다. 왕의 거처이자 조정의 심장부였던 이곳은 겉으로는 엄숙하고 질서정연했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정치적 암투와 피비린내 나는 숙청의 현장이 숨어 있었다. 경복궁 북쪽에 위치한 ‘청풍계’는 현재 거의 흔적조차 없지만, 조선시대에는 궁중 내 문제 인물들이 조용히 처리되던 외진 공간이었다. 특히 중종대 후반, 윤임 일파와 관련된 세자 책봉 문제로 인한 갈등 속에서 윤씨 가문이 몰락하던 과정에서 이 지역은 감금과 고문, 밀회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사화(士禍)의 한 가운데서 벌어진 이 사건은 조정 대신들은 물론, 궁녀들까지 연루된 대규모 숙청으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