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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왕의 죽음과 장례: 국장 절차로 보는 정치 구조카테고리 없음 2025. 7. 30. 17:07
조선시대 왕의 죽음, 단순한 장례가 아닌 권력의 재편조선 왕실에서 왕의 죽음은 단지 슬픔의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정권 교체와 정치 권력 재편이라는 큰 흐름과 맞물려 있었다. 왕이 승하하면 ‘국장(國葬)’이 즉각 시작되었고, 이는 국가적 애도와 더불어 새로운 권력의 정통성과 질서를 바로잡는 절차였다. 국장은 일정 기간의 복상(服喪)과 부묘(祔廟, 선왕의 사당 편입), 능침 조성, 장지 결정, 상중 정책 결정 등 다층적인 국가의식으로 구성되었으며, 이 모든 절차는 정치적 이해관계의 충돌 지점이었다. 왕의 장례는 단순히 유교적 전례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후계자의 정통성을 천명하고, 구세력과 신세력 간의 줄다리기를 통해 정국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정치 무대였다. 예컨대 조선 중기의 선조 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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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국사 중 '사대부의 개인 일기'한국사 2025. 7. 29. 13:55
실제 사대부들의 일기에서 드러나는 개인적 삶, 정치·사회 비평, 그리고 야사적 역사를 기록한 사대부의 일기, 야사의 또 다른 창구조선시대는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사회로, 학문과 기록의 전통이 매우 강했습니다. 특히 지식층이자 관료 계급이었던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문화가 있었고, 그 결과 많은 ‘개인 일기’들이 후세에 전해졌습니다. 사대부들의 일기는 단순한 사적인 기록을 넘어, 왕실 동향, 조정의 분위기, 민심, 지역 행정, 심지어는 가정사와 풍속까지 담긴 ‘야사의 원천’으로 평가됩니다. 대표적인 사대부 일기로는 『연려실기술』, 『계암일록』, 『묵재일기』, 『매천야록』, 『존재일기』, 『쇄미록』 등이 있으며, 이들 기록은 개인의 눈으로 본 조선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생생하게 보여줍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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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부인 소헌왕후 한국사 뒷 이야기한국사 2025. 7. 28. 16:08
조선의 어진 왕비, 소헌왕후 심씨의 생애소헌왕후 심씨는 조선의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의 정비로,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 충녕대군이 세자에 책봉되기 전부터 혼인하여 조선 초 왕실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크게 이바지한 인물입니다. 본관은 청송 심씨이며, 고려 말과 조선 초에 걸쳐 명문가로 이름을 떨친 청송부원군 심온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395년에 태어난 그녀는 1408년 충녕대군과 혼인했고, 이후 1418년 세종이 즉위함에 따라 왕비로 책봉되었습니다. 소헌왕후는 성품이 너그럽고 지혜로워, 내명부를 잘 다스리는 한편, 후궁들과 자녀들 간의 갈등을 조율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세종이 질병으로 자주 편찮았던 시기에도 내조를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유학의 이상에 부합하는 덕망 있는 왕비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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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야사 시리즈 – 조선의 매일 기록, ‘승정원일기’의 세계한국사 2025. 7. 26. 16:34
– 왕의 말 한마디, 숨소리까지 남긴 세계 최대 기록 유산 – 승정원일기란 무엇인가?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기록 유산이라면 보통 ‘조선왕조실록’을 떠올리지만,그보다 훨씬 더 방대한 분량과 생생한 현장감을 자랑하는 문헌이 있으니 바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다.승정원은 조선시대 왕명을 전달하고 국정을 보좌하는 ‘왕의 비서실’과 같은 역할을 했던 기관인데,이곳에서 매일 작성한 업무 기록이 바로 ‘승정원일기’이다.쉽게 말해, 조선 왕과 신하들의 매일 대화, 업무 보고, 처분, 명령, 감정 반응까지 적나라하게 남긴 일기형태의 관청 문서다. 현재 전해지는 승정원일기의 분량은 무려 약 3,243책, 2억 4천만 자 이상으로, 계에서 가장 긴 역사 기록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돼 있다. 심지어 이 방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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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대왕 승정원일기를 통해 한국사 알아보기한국사 2025. 7. 25. 14:15
조선시대의 공식 기록 중 하나인 『승정원일기』왕과 신하 간의 대화, 명령, 보고, 그리고 일상의 국정 운영까지 상세하게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못지않은 사료입니다. 특히 세종대왕 재위 기간 동안의 승정원일기에는 왕의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당시 궁중의 생생한 모습, 조선 사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야사(野史)적인 흥미 또한 제공합니다. 세종은 학문과 과학을 중시한 성군이자,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실천한 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기록을 통해 그는 때로는 인간적인 실수와 분노, 애정, 고뇌를 지닌 한 사람으로도 읽힙니다. 예를 들어, 세종은 신하들과의 논쟁에서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한밤중까지 대화를 이어가며 집요하게 설득하거나 질책하는 모습도 종종 보입니다. 이는 단순히 엄격한 군주가 아닌, 사사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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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세종대왕의 업적, 그가 ‘성군’이라 불리는 이유한국사 2025. 7. 24. 19:00
조선의 근본을 바꾼 위대한 왕의 세 가지 업적백성을 위한 문자, 훈민정음 창제세종대왕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단연 첫 번째는 훈민정음 창제입니다.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공식 문서는 모두 한문(漢文)으로 작성되었고,일반 백성은 이를 읽거나 쓰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세종은 이에 대해 깊은 문제의식을 갖고, 백성들이 자신의 말소리를 그대로 기록할 수 있는 문자 체계,즉 우리말을 위한 ‘글자’ 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그 결과, 1443년에 창제되어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은‘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백성을 위한 문자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훈민정음은 자음과 모음을 분리하여 체계적으로 조합할 수 있으며,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이러한 창제 방식은 유럽 알파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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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에 대해 한국사 뒷 이야기 및 야사한국사 2025. 7. 24. 13:01
한국사 뒷이야기: 인간 세종, 왕의 그림자“왕도 아프다” – 만성질환과 숨겨진 고통세종대왕은 흔히 ‘성군’의 대명사로 불리며, 한글 창제, 과학기술 진흥, 민본 정치 등으로 찬사를 받는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역사 속에 기록된 완벽한 군주 이미지 뒤에, 늘 병과 싸워야 했던 인간적인 고통을 안고 살았습니다. 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중년 이후 심한 당뇨병과 피부병, 시력 저하, 수전증까지 앓았으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날도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고 합니다.특히 당대 주치의였던 전순의가 기록한 『향약집성방』에는 세종을 위한 약 처방이 빼곡히 적혀 있는데, 이는 그가 거의 매일 복용약 없이 하루를 보내기 힘들 정도로 건강이 악화돼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 새벽 일찍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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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조선초기에 활약했약했던 황희한국사 2025. 7. 23. 14:47
조선초 명재상 황희, 그 유명한 ‘대답 안 한 대답’조선판 장수 만세: 99세까지 산 전설의 재상“황희 정승”이라는 이름,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으시죠?‘정승이 된 개도 황희 정승은 못 따라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그는 조선의 대표적인 명재상이자 가장 오래 재상 자리를 지킨 인물입니다. 놀랍게도 정승으로만 무려 18년, 관직 생활을 60년 넘게 한 초장수 정치인이었죠. 조선 태종과 세종, 두 임금을 모셨고, 조정에서도 워낙 점잖고 인자한 인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무려 99세까지 살았는데, 조선시대에 이건 거의 기적 수준의 수명입니다.그래서 후대에는 그를 두고 “살아서 성인(聖人) 소리 듣고, 죽어서도 덕이 흘러나왔다”는 말까지 생겼죠.하지만 황희가 단순히 오래 살고 착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