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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송논쟁 숙종의 정치사 한국사 뒷이야기
    카테고리 없음 2025. 9. 9. 14:27

     

     

    새벽: 소년 왕으로 즉위, 예송논쟁의 연속 속 불안한 출발.

    정오: 환국정치 단행, 붕당을 활용해 왕권 강화.

    해질녘: 궁중 권력 다툼과 환국 반복, 강력한 왕권과 정치적 불안정의 유산.

    숙종의 정치사 한국사 뒷이야기

    1. 새벽, 젊은 왕의 즉위 예송논쟁의 연속과 정치적 혼란

    1674, 현종이 세상을 떠나자 열네 살의 소년 왕 이순이 즉위하여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이 되었다.

    즉위의 새벽, 궁궐은 어린 임금의 즉위식으로 술렁였지만, 동시에 조정은 이미 제2차 예송논쟁의 불씨로

    가득 차 있었다. 인선왕후의 상복 문제를 두고 서인과 남인이 다시 첨예하게 대립했고, 새 임금은

    즉위하자마자 정파의 갈등 속에 끌려 들어갔다.

     

    어린임금의 시대

    정사에는 임금이 총명했으나 나이가 어렸으므로 조정이 흔들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사 뒷 이야기에서는 즉위 첫날 숙종이 신하들의 격렬한 논쟁을 듣고는 어린 나이에도 경들은 예를 말하나, 나에겐 백성이 먼저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는 그의 치세가 단순한 명분 논쟁을 넘어, 실제 권력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로 이어질 것임을 예고한 말이었다.

    새벽의 즉위는 단순한 세습이 아니라, 왕권과 신권의 새로운 힘겨루기 시작점이었다. 어린 임금이었지만,

    숙종은 점차 스스로의 의지를 드러내며 왕이 직접 정국을 흔드는 시대를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2. 정오, 환국정치의 소용돌이 왕권 강화의 실험

    숙종 정치의 정오, 가장 뜨겁게 빛났던 순간은 바로 환국정치(換局政治)였다. 그는 붕당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특정 붕당을 몰아내고 다른 붕당을 등용하는 극적인 정국 전환을 단행했다. 1680년 경신환국에서는 남인을 몰아내고 서인을 등용했고, 1689년 기사환국에서는 서인을 내쫓고 남인을 중용했으며, 1694년 갑술환국에서는 다시 남인을 몰아내고 서인을 기용했다.

     

    봉당정치

    정사에서는 이를 두고 임금이 시세를 따라 정국을 바꾸었다라고 기록했지만, 한국사 뒷 이야기에서는

    더 날카롭게 전한다. 환국이 있을 때마다 대신들이 궁궐 앞에서 피를 토하듯 서로를 고발했고, 숙종은 냉정하게 이를 지켜보며 당을 갈라내는 칼은 내 손에 있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는 숙종이 단순히 정국의 희생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붕당을 활용하여 왕권을 실질적으로 강화한 군주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환국정치는 백성들에게는 혼란으로 다가왔다. 정오 무렵의 숙종은 강력한 왕권을 추구했지만, 실제 정치 현장은 붕당의 대립이 극단화되고 민생이 흔들리는 결과를 낳았다. 왕은 권력을 움켜쥐었으나, 정치는 안정되지 못한 채 피로한 반복 속에 빠져 있었다.

     

    3. 해질녘, 궁중 권력과 유산 숙종 정치의 빛과 그림자

    숙종 치세의 해질녘은 궁중 권력 다툼과 후계 문제가 겹쳐졌다. 인현왕후, 장희빈, 그리고 숙빈 최씨로 이어지는 궁중의 세력 다툼은 단순한 후궁 간의 갈등이 아니라, 붕당 정치와 결합된 권력의 다층적 충돌이었다. 특히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폐출시키고 중전이 된 사건은 정치와 사적 감정이 결합된 대표적 사례였다.

    한국사 뒷 이야기에서는 숙종이 인현왕후 폐출 당시 깊은 갈등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나는 한 여인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한 당파를 버린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훗날 그는 다시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고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렸지만, 이는 곧바로 또 다른 환국의 불씨가 되었다.

     

    궁중 권력다툼속

    1720, 숙종은 46년의 긴 치세를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왕권을 강화한 군주로, 환국정치와 궁중 권력 다툼 속에서도 주도권을 놓지 않았던 임금이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정치적 유산은 강력한 왕권과 극단적 붕당 정치의 병존이었다. 역사학자의 시선에서 숙종은 왕권 강화에 성공했으나, 조선 정치 구조의 불안정을 심화시킨 양면적 군주였다. 해질녘의 숙종은 강한 군주였지만, 동시에 끝없는 정치적 피로와 갈등의 시대를 상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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