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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조의 정치사를 ‘한국사 뒷이야기’
    한국사 2025. 8. 30. 14:24

    새벽: 방계 출신으로 즉위, 사림의 등용과 붕당정치의 시작.

    정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왕의 도피와 리더십 상실.

    해질녘: 붕당정치 심화, 왕권 무력화, 조선 정치 불안의 구조적 뿌리 형성.

    선조의 정치사를 ‘한국사 뒷이야기’

    새벽, 젊은 왕의 즉위 사림 정치의 서막

    1567, 명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종친 가문에서 비교적 먼 방계였던 하성군 이균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바로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였다. 즉위 당시 선조는 16세의 소년 군주였고, 정치 경험도 부족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조선 정치의 흐름은 크게 달라졌다. 훈구 대신들이 차츰 약화되고, 지방에서 도덕과 학문으로 명성을 쌓은 사림 세력이 본격적으로 중앙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조의 즉위

    정사에서는 선조 즉위 후 나라의 기풍이 새로워졌다라고 기록하지만, 한국사 뒷이야기에는 즉위 첫날의

    일화가 전해진다. 즉위식 직후 한 신하가 사림 인물들을 추천하자, 선조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사람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도학(道學)을 아는 자라면 나라를 맡길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선조가 사림을 신뢰하며 정국 운영을 맡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장면이었다.

    이때부터 조선 정치는 사림 중심의 붕당정치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진 붕당의 대립은 왕권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정치적 견제의 장치로 작용했으나, 선조의 입장에서는 새벽부터 이미 왕권의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정오, 임진왜란의 충격 무너진 왕권과 전란의 그늘

    선조 치세의 정오, 즉 정치의 한복판을 흔든 사건은 단연 임진왜란(1592)이었다. 왜군이 부산에 상륙하자, 불과 20일 만에 한양이 함락되었고, 선조는 의주로 피난을 떠나야 했다. 이는 조선 왕조 역사상 전례 없는 왕의 도주였고, 백성들의 신뢰를 크게 잃게 만든 사건이었다. 정사에는

    임금이 피난하니 나라 사람들이 낙심했다고 기록돼 있다.

     

    왕의 리더쉽 상실

    한국사 뒷이야기에서는 당시 선조의 심경을 보다 극적으로 전한다. 의주로 향하던 길, 한 신하가

    전하, 백성이 도탄에 빠졌습니다. 어찌하여 백성과 함께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묻자,

    선조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죽어도 좋으나, 왕실이 끊어지면 나라 또한 끊어진다.”

    이는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말이었지만, 백성의 눈에는 비겁함으로 비쳤다.

    임진왜란은 결국 조선을 참혹하게 만들었고, 이후 정유재란까지 이어지며 조선 사회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이 시기 의병들의 활약과 명나라의 파병, 백성들의 희생이 나라를 지탱했지만,

    정오 무렵의 선조는 사실상 왕으로서 리더십을 상실한 상태였다.

     

    해질녘, 붕당정치의 심화 왕권의 무력함

    전란 이후 조정은 재건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선조의 만년은 붕당의 격화로 얼룩졌다.

    사림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극렬히 대립했고, 선조는 이를 조정하기보다 오히려 이간책을 활용해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붕당의 분열은 더 심해졌고, 왕권은 점점 무력해졌다.

    한국사 뒷이야기에는 선조가 만년에 신하들 앞에서 술잔을 들며 나는 왕이었으나, 왕 노릇을 하지 못했다라고 고백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실제로 선조의 통치는 왕권이 아닌 붕당 세력의 논쟁에 의해 좌우되었으며, 이는 후대 광해군과 인조 시기까지 이어지는 정치 불안의 근원이 되었다.

     

    선조가 세상을 떠나다

    1608, 선조는 41년의 긴 치세를 마감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치세는 개혁적 이상과 현실적 한계가

    교차하는 시대였으며, 붕당정치의 시작과 임진왜란의 치욕이라는 두 굵직한 사건으로 기억된다.

    역사학자의 시선에서 선조는 조선 정치 구조의 전환을 이끌었으나, 스스로는 그 구조의 희생자가 된 군주라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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