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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성종의 정치사 '한국사 뒷 이야기'
    한국사 2025. 8. 25. 15:20

    조선 성종(成宗, 재위 1469~1494)의 정치사 한국사 뒷이야기

     

    성종은 조선 전기 가장 오랜 기간(25) 재위한 임금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유교적 국가 질서를 확립한 군주입니다.

    조선 성종의 정치사 '한국사 뒷 이야기'

     새벽, 열세 살 소년 왕의 즉위 권력의 균형 위에 선 성종

    1469, 예종이 갑작스럽게 붕어하면서 조선 조정은 다시 한 번 왕위 계승의 혼란에 빠졌다. 예종의

    아들이 있었지만 아직 어려 정치적 기반이 약했기에, 대신들은 세조의 손자이자 열세 살의 자을산군을

    옹립했다. 그는 곧 조선 제9대 왕 성종이 되었고, 이 순간부터 조선의 새로운 정치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즉위식은 단순한 세습이 아니었다. 뒤에는 한명회, 신숙주 등 훈구 대신들의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었다. 한국사 뒷이야기에 따르면,

     

    어린 성종의 즉위식

    즉위식 새벽에 어린 성종은 눈물을 글썽이며 나는 아직 글도 다 배우지 못했는데, 어찌 나라를 맡겠는가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신들은 그의 나이를 오히려 장점으로 삼았다. 어린 임금은 정치적으로 무력했으나,

    대신들에게는 섭정과 권력 확대의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성종은 즉위 직후부터 훈구파 대신들의

    그늘에 둘러싸였고, 그의 정치적 기반은 취약했다. 이 불안한 출발이 훗날 훈구와 사림의 대립,

    그리고 연산군 시기의 비극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었다.

     

    정오, 제도 정비와 사림 등용 성종 정치의 핵심

    성종 치세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 제도의 완비와 유교적 통치 질서의 정착이었다. 그는 세조 때부터 추진된 경국대전을 최종 완성·반포하여 조선 법제의 근간을 마련했다. 또한 홍문관을 설치해 학문과 정책 연구를 강화했고, 집현전 폐지 이후 약화된 학문 행정을 다시 부흥시켰다. 이는 후대 세종의 문치(文治) 이상

    되살리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성종의 정치에서 중요한 또 하나는 사림의 본격적 등용이다. 김종직을 비롯한 신진 유학자들이 대거 중앙 정계에 진출했으며, 그들은 지방에서 학문과 도덕을 닦은 인재들이었다. 성종은 이들을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 배치하여 언론 기능을 강화했다. 이는 왕권을 보완하고 훈구 대신들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전략이었다.

     

    성종의 정치적 실험

    하지만 뒷이야기는 달랐다. 성종은 한편으로는 훈구파 대신들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림의 강직한 간언에 부담을 느꼈다. 한국사 뒷이야기에 전하기를, 어느 정오 회의 자리에서 성종이

    사관의 비판을 듣고 내가 임금이지만, 과인은 늘 책망만 받는구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한다. 성종은 사림과 훈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했으나, 이 모순적 구조는 결국 연산군 시기 사화(士禍)로 폭발하게 된다.

     

    해질녘, 후궁 정치와 왕권의 그늘 성종 정치의 뒷이야기

    성종의 치세는 겉으로는 이상적인 문치 정치였지만, 궁중 내부에서는 후궁 정치와 왕권의 약화라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성종은 왕비 공혜왕후와의 사이에 자녀를 얻지 못했고, 여러 후궁을 통해 왕자와 공주를

    두었다. 이 과정에서 후궁들의 세력이 확대되었고, 이는 훗날 연산군 즉위와 관련된 파란을 불러왔다.

    특히 폐비 윤씨 사건은 성종 정치의 어두운 단면이다. 윤씨는 처음에는 총애를 받았으나, 성종과의 갈등 끝에 폐위되고 사사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궁중 암투가 아니라, 왕권과 신권의 미묘한 균형을 보여준다. 훈구 대신들은 왕실 내 갈등을 빌미로 왕권을 제어했고, 성종은 끝내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야사에서는 성종이 폐비 윤씨의 죽음을 후회하며 내가 한 여인을 지키지 못했으니, 어찌 천하를 지킬 수 있겠는가라고 탄식했다고 전한다.

     

    연산군 시대 비극의 단초 제공

    1494년 성종이 세상을 떠난 해질녘, 그는 후계자 연산군에게 나라를 물려주었지만, 동시에 불안한 정치 구조와 미해결의 갈등도 함께 남겼다. 성종의 정치는 유교적 이상과 제도 정비라는 빛을 남겼으나, 궁중의 암투와 권력 구조의 불안이라는 그림자 또한 지울 수 없었다. 역사학자의 시선에서 성종은 조선 전기 정치의 완성자이자, 동시에 후대 비극을 예고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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