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조선개국공신 정도전의 한국사역사적 뒷 이야기

+ing 2025. 8. 7. 16:29

혁명가이자 설계자, 조선을 만든 남자 정도전

조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정도전(鄭道傳, 1342~1398)입니다.

흔히 조선을 설계한 정치가로 불리는 그는, 무장 이성계가 세운 신생 왕조의 철학적 뼈대를 마련하고

행정·교육·경제·군사 제도의 기틀을 닦은 장본인입니다. 고려 말의 혼란 속에서 성리학 이념을 통해 유교적 이상 국가를 꿈꾼 그는, 단순한 실무 관료를 넘어선 사상가이자 혁명가였습니다.

 

정도전은 본래 고려 충숙왕 때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성균관을 수석으로 졸업한 유학자였으며,

이색, 이숭인 등과 함께 고려 말의 유교 개혁 진영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고려가 왜구, 홍건적,

권문세족의 부패로 붕괴해가자, 그는 급진적 정치개혁에 눈을 뜨고 이성계와 손을 잡아 신왕조 창업에 핵심적으로

참여합니다. 위화도 회군 이후 고려는 사실상 붕괴했고, 그는 실질적 조정의 2인자가 되어

조선 건국을 이끕니다.

 

그가 만든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불씨잡변> 등은 단지 행정 매뉴얼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떤 철학 위에 세워져야 하는지를 명확히 선언한 개혁 선언문이었습니다. 왕권과 신권의 균형, 불교 배척과 유교

우위, 신분개혁과 관료제 확립, 그리고 한양 천도 등 조선의 국정 운영이 모두 그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정도전은 건국의 설계자이자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조선의 진정한 초대 총리라 할 수 있습니다.

정도전의 한국사 이야기

왕보다 강한 권력, 그리고 몰락의 서막

하지만 정도전의 이상 정치는 곧 그의 몰락을 예고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세웠지만, 왕권을 절대화하는 것이 아닌 유교적 신권 중심의 통치 체제”, 즉 관료와 유학자 중심의

이상국가를 지향했습니다. 이성계를 왕으로 세운 것도 군주의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이지, 절대 권력을 부여하기 위함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신하 중심의 정치체제를 세우고자 했고, 실제로 세자였던 이방석을

세우면서 정권을 사실상 장악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조선을 창업한 무장 집단, 특히 이방원(훗날 태종)은 정도전과 철저히

대척점에 서 있었습니다. 이방원은 무력으로 조선을 세운 건 자신들의 공인데, 정치는 유학자들이 독점하고 군주는 허수아비가 되는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방원은 정도전이 자신을 견제하고 제거하려 한다는 첩보를 듣고 극도로 경계하게 됩니다. 결국 이는 조선 초 최대의 정변인 1차 왕자의 난(1398)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방원은 무력을 동원해 개국공신들을 숙청하고, 정도전을 포함한 정몽주, 남은, 심효생 등 조선 창업의

핵심 인물들을 제거합니다. 이로써 조선 초기 ()의 나라로 가려던 이상은 무력()의 나라로 전환되며, 정도전은 왕도정치의 꿈을 품고 새 나라를 설계한 지 6년 만에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한때 "왕보다 더 왕 같았다"는 그의 권세는 결국 자신이 만든 체제 안에서 무너진 비극이 되었습니다.

 

 정도전의 죽음 이후, 남겨진 흔적과 역사적 뒷이야기

정도전의 죽음은 조선 건국 초 정치 노선의 급격한 변화를 상징합니다. 그의 유교 이상주의적 정치 철학은

이방원 체제에서 대폭 수정되었고, 이후 조선은 절대 군주제 체제로 재편됩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정도전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가 쓴 책들은 오랫동안 금서로 지정되었지만,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조선의 설계자이자 선각자로 회자되었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 그의

정치 철학은 다시 조명받기 시작합니다.

 

조선 후기에 실학자들이 정도전을 재평가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가 주장한 관료제, 법치주의,

교육 중심 국가, 형평 있는 인재 등용, 부국강병론 등은 성리학 체제에서 벗어난 현실적 개혁 방향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정조는 정도전을 복권시키고 그의 책들을 다시 간행하도록 지시했으며,

이후 그는 공식적으로 조선의 정통 공신 반열에 복귀하게 됩니다.

 

정도전은 한때 권력의 정점에 섰지만, 자신이 만든 체제에 의해 스스로 무너진 아이러니의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패배한 정치인이 아니라, 조선을 구상하고 실현시킨 건국의 철학자로서 지금까지도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은 비극이었지만, 그가 남긴 정치 철학과 국가 비전은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정도전은 이념과 정치,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 가장 현대적인 조선 인물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