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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에 대해 한국사 뒷 이야기 및 야사

+ing 2025. 7. 24. 13:01

한국사 뒷이야기: 인간 세종, 왕의 그림자

세종대왕에 대해 한국사 뒷 이야기 및 야사

왕도 아프다만성질환과 숨겨진 고통

세종대왕은 흔히 성군의 대명사로 불리며, 한글 창제, 과학기술 진흥, 민본 정치 등으로 찬사를 받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역사 속에 기록된 완벽한 군주 이미지 뒤에, 늘 병과 싸워야 했던 인간적인

고통을 안고 살았습니다.

 

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중년 이후 심한 당뇨병과 피부병, 시력 저하, 수전증까지 앓았으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날도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특히 당대 주치의였던 전순의가 기록한 향약집성방에는 세종을 위한 약 처방이 빼곡히 적혀 있는데,

이는 그가 거의 매일 복용약 없이 하루를 보내기 힘들 정도로 건강이 악화돼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 새벽 일찍부터 정사를 보고, 백성의 어려움을 직접 챙겼습니다.

왕의 자리에서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던 시대,

세종은 침묵 속에서 병을 견디며 나라를 앞에 두고 자신을 뒤로 미룬 임금이었습니다.

 

세종이 화를 내면, 진짜 무섭다따뜻한 얼굴 속 강한 권력자

세종은 자상하고 온화한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은 강단 있고 무서운 결단을 내릴 줄 아는

강한 군주였습니다.

일례로 그는 재위 초기에 사대부 출신 대신들이 자신을 어린 왕이라 얕보자, 일부러 매서운

국문(국가 재판)을 직접 진행해 대신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형 양녕대군이 사사로운 세력 확장을 꾀하거나 문제를 일으켰을 때도,

형이라 하여 봐줄 수 없다며 왕명으로 유배를 보내는 단호함을 보였습니다.

 

그 중 한 명인 최만리는 훈민정음 반대를 이유로 일시적으로 밀려났으며, 한글 창제를 반대한 신하들에겐

세종이 직접 너희들이 무지한 것이라 꾸짖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 세종은 따뜻한 얼굴 뒤에 카리스마와 정치적 감각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는 자주 나오진 않았지만, 한 번 나오면 모두를 침묵하게 만드는 무게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글자가 예쁠까?” 훈민정음의 감성적 뒷이야기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대왕 업적의 꽃입니다. 하지만 교과서에는 잘 나오지 않는 이 과정의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뒷이야기도 존재합니다.

세종은 글자의 모양에 대해 집현전 학사들과 수없이 토론을 거듭했고, 자음과 모음의 모양을 백성들이

보자마자 쉽고 예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직접 종이에 붓으로 수백 번 써가며 이 글자는 너무 복잡하지 않은가?”,

이 글자의 느낌은 너무 딱딱하지 않은가?”라고 고민했다는 야사도 전해집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훈민정음의 모양이 입 모양을 단순하게 표현한 원형으로 완성되었고, ‘

혀의 위치를 형상화한 부드러운 각으로 정해졌다고 하지요.

 

또한 한글은 단지 문자체계만이 아니라, 당시 백성의 입말(구어)를 반영한 최초의 시도였습니다.

이는 말 그대로 고급 문자의 대중화였고, 이는 유럽보다도 수백 년 앞선 발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세종은 백성을 위한 글자를 만들면서 단 한 번도 이건 왕의 글자다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단지 사람마다 말이 다른데, 말이 다르면 뜻도 통하지 않으니,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들어야겠다는 이유로 국문을 만들었고, 이 한 문장은 오늘날까지도 한국인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역사적 발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