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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 속 조선 백성이 낸 세금의 정체

+ing 2025. 7. 12. 15:38

쌀 내고, 실 내고, 솔방울도 낸다?

조선 시대 백성들이 낸 세금은 오늘날처럼 돈으로만 내는 게 아니었습니다. 당시엔 세금을 실물로 바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전세(田稅)입니다. 이건 농사를 지은 사람이 수확한 곡식의 일부를 국가에 내는 세금이었죠. , 보리, 콩 같은 걸

내는 건 흔한 일이었고, 비가 안 와서 수확이 적든 병충해로 농사가 망했든 내야 할 건 내라는 게 나라의 입장이었습니다.

 

이 전세는 단순히 수확의 10분의 1 정도지만, 백성 입장에선 생존이 걸린 문제였죠.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공납(貢納)이라는 세금도 있었는데, 이건 지역 특산물을 납부하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강원도는 솔방울, 전라도는 종이,

경상도는 비단을 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걸 직접 바치기보다, ‘대신 내줄게요하는 공인(代納상인)이 등장하면서 중간에서

바가지 쓰는 일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나라보다 공인이 더 무섭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죠.

한국 역사 속 조선 백성이 낸 세금의 정체

돈 대신 등짝을 내는 노동세

조선 백성들에게 세금은 꼭 곡식이나 물건만 의미하진 않았습니다. 몸으로 때우는 세금, 즉 노동세도 있었죠. 대표적인 게

()입니다. 이는 나라에서 시키는 공사에 사람을 내보내는 세금이에요. 성을 쌓거나, 물길을 만들거나, 나무를 베는 일에

강제로 동원되는 거죠. 요즘으로 치면 국가 프로젝트에 무료로 투입되는 셈입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집안에서 한 명씩

돌아가며 가야 했고, 운이 없으면 몇 달씩 집을 비워야 했습니다. 농번기엔 진짜 절망이었겠죠.

 

여기에 더해 군포(軍布)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군역을 대신해 옷감으로 바치는 세금인데, 이걸한 사람당 두 필()

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역 수령이나 관리들이 욕심을 부려 올해는 두 벌로 부족해요~ 세 벌 주세요~”라며 백성들을 더

쥐어짜곤 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백성들은 사는 게 세금 내려고 태어난 거냐는 푸념도 했죠.

 

왜 우리만 내야 해요?” 백성의 분노, 개혁의 불씨가 되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세금에 대한 불만은 점점 커졌습니다. 세금을 성실히 내는 건 대부분 양민(보통 백성)이었고, 양반과 지주는

각종 면세 혜택을 누렸거든요. 소작농은 수확의 절반을 지주에게 주고, 남은 걸로 세금까지 내야 하니 살림이 나아질 리

없었습니다. 이런 불공정 구조 속에서 생겨난 게 바로 대동법(大同法)입니다. 공납을 쌀로 통일해서 공인을 거치지 않게

하려는 개혁이었죠. 그리고 균역법(均役法)도 등장했습니다. 군포를 한 필로 줄이고, 그 부족분은 국가가 부유층에게 세금으로

걷는 방식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좀 가진 사람도 같이 내라는 취지였죠. 백성들의 세금 부담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함께 내는 사회라는 개념이 이때부터 조금씩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겁니다. 지금 우리가 세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도, 이렇게 조선 백성들이 먼저 부당함을 견디고 목소리를 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