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법, 맛 비교 교과서에는 없는 한국사 뒷이야기
궁중음식 복원기 & 현대화 시도
물 위에 뜬 연꽃같이 정갈하고, 색과 향이 어우러진 조선의 궁중음식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왕조의 권위와 품격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궁중음식의 맥은 급격히 단절되었고, 오랜 세월 대중과 멀어졌다.
그러던 중 20세기 후반, 이 맥을 다시 잇기 위한 복원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중심에는 조선 말기 마지막 수라간
상궁 중 한 명이었던 ‘한희순’의 기억과 구술, 그리고 이를 이어받은 궁중음식 연구자들의 집념이 있었다.
한희순 상궁은 조선 황실에서 직접 수라를 올린 인물로,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명맥을 지켜가며 구전으로 전해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고문헌 『진찬의궤』, 『주방문』, 『음식디미방』 등을 종합하여 실물 재현이 이루어졌고, 그렇게 잊힌 수라의 세계가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궁중음식 복원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정확한 맛’을 구현하는 데 있었다. 조선 시대는 지금처럼 계량도구나 통일된
조리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적당히”, “알맞게”라는 표현이 많았고, 이는 재현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또한 계절에 따라 재료의 상태가 달라졌고, 수라상은 철저히 왕의 건강과 기호에 맞춰 조절되었기 때문에 일률적인
레시피라는 개념도 부적절했다.
예를 들어, 궁중의 대표 음식인 신선로의 경우, 현대에는 육수에 소고기나 해산물 육수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당시에는 꿩 육수나 사골 육수 등을 이용해 깊고 은은한 맛을 냈다. 또 탕평채는 오늘날엔 가벼운 반찬처럼 여겨지지만,
원래는 콩물과 묵, 각종 채소를 정성스럽게 쌓고 간장 소스를 끼얹어 만든 고급 요리로, 보는 것만으로도 계절감과 정성이 묻어나는 음식이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조리 기술의 차원이 아닌, 시대와 신분, 그리고 철학의 차이로까지 이어진다.
이처럼 복원된 궁중음식을 현대화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향이 존재했다.
첫째는 원형보존형 복원
둘째는 생활 밀착형 현대화였다
원형보존은 서울 강남의 한국궁중음식연구원이나 덕수궁의 고궁음식전시 등에서
엄격하게 시행되었다. 여기서는 전통 도기, 목기, 은기로 상을 차리고, 상차림의 순서까지 철저히 복원하였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대중에게는 거리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반면 ‘현대화’는 도시락, 뷔페, 간편식 형태로 궁중요리의 핵심
요소만 살리고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궁중 떡볶이는 맵지 않고 간장 베이스로 만든
왕실식 떡볶이로 각종 나물, 고기, 해산물을 넣은 궁중잡채 스타일로 재해석되었다.
또 신선로는 인덕션이나 전기팬을 활용한 개인용 냄비요리로 변화했고, 수삼정과나 배숙 같은 후식은 디저트 카페나 항노화 건강음료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는 단지 ‘음식을 파는’ 차원을 넘어, 조선 왕실의 미학과 철학을 맛으로 계승하는 새로운 문화 창출이었다.
이렇게 조선 왕조의 음식 문화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현대인의 식탁으로 스며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하나의 다리가 되고 있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 음식 복원의 역사는 조선의 미각과 미학, 그리고 민족 정체성 복원의 소중한 발걸음이기도 하다.